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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14년 만에 환전규제 폐지하고 자유변동환율제 채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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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손영식(아르헨티나)
페소예금에서 달러예금으로 갈아타는 예금주
최근 아르헨티나 은행권에서 갑작스러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페소화 예금이 빠져나가는 반면, 달러 예금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부터 약 한 달간 페소 예금 잔액은 1조3,000억 페소(약 11억5,330만 달러)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달러 예금 잔액은 10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
이는 많은 예금주들이 페소 예금을 달러 예금으로 갈아타고 있다는 뜻인데, 수익률만 놓고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5월 기준, 주요 시중은행이 공시한 달러 예금 금리는 최저 0.2%에서 최고 4% 수준인 반면, 페소 예금 금리는 최저 27.5%에서 최고 35%에 달한다. 수익률만 본다면 페소 예금이 훨씬 유리한 셈이다. 게다가 달러 예금에 4%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은 단 두 곳뿐이며, 대부분의 은행은 2%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페소 예금의 경우 20%대 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은 소수이며, 대부분이 30%대 금리를 붙이고 있다.
수익률은 페소예금이 유리하다고?
현재 나타나고 있는 페소 예금 감소와 달러 예금 증가 현상을 단순히 국민의 ‘달러 사랑’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23년 대통령 취임식 때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얼굴이 인쇄된 달러 피켓을 들고 축하하고 있다. (출처: 로이터)
아르헨티나 국민의 맹목적인 달러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자국 통화인 페소화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인플레이션으로 페소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안정적인 달러를 사실상 유일한 저축 수단으로 여겨왔다. 중남미에서 유명한 ‘매트리스 밑 달러’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은행조차 믿지 못해 환전한 달러 현찰을 예금하지 않고 집 안 매트리스 밑에 보관하던 관행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어권에서 ‘매트리스 밑 달러’는 금융권 바깥에 존재하는 현금성 자산을 뜻하는 사실상의 고유명사로 통용된다.
이렇다 보니 페소 예금이 외면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가가 치솟던 2023년, 페소 예금 금리는 연 133%까지 올랐지만,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도 실질 수익은커녕 손해였다. 아르헨티나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무려 211.41%였다. 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화폐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달러로 바꿔 집에 보관하는 편이 더 나은 자산 관리법으로 여겨진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환경이 과거와 다르다. 인플레이션이 점차 잡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해 인플레이션을 18%로 전망하고 있으며,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장 전망 조사에서도 올해 인플레이션 예상치는 평균 31.8%로 집계됐다. 금융권의 예측이 다소 보수적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페소 예금에서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페소-달러 환율도 완만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 1,200페소 수준이던 암시장 환율은 5월 현재 1,100페소대로 낮아졌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연말까지 1,000페소 선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달러로 환전하기보다는 일단 페소 정기예금에 예치한 뒤, 만기 후 원금과 이자 수익을 합쳐 달러로 환전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환율 변동이라는 리스크는 감수해야 하지만, 환차익까지 고려하면 투자 원금을 달러 기준으로 약 10%가량 불릴 수도 있어 수익률에 민감한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결국, 최근 페소 예금에서 달러 예금으로의 급격한 이동을 단순히 국민적 ‘달러 사랑’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와 달러화. (출처: 일간 라가세타)
드디어 풀린 환전규제
그렇다면 달러 예금이 급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페소-달러 환전 규제의 전면적 폐지에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달 14일부터 14년간 이어져 온 환전 규제를 전면 철폐했다. 2011년 처음 도입된 이래, 아르헨티나는 만성적인 달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환전 규제를 시행해왔다. 은행이나 환전소를 통한 공식 환전은 1인당 매월 최대 200달러로 제한되었고, 각종 보조금 수급자, 공무원, 코로나19 당시 재난지원금을 받은 영세 자영업자 등은 공식 환전 자체가 금지됐다.
이번 환전 규제 폐지는 2023년 12월 취임한 자유지상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취임 후 줄곧 “환전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 그러던 중 올해 초 “2026년 1월 1일부터 환전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4월 이를 예정보다 앞당겨 기습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정부가 조기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자금 확보’가 있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환전 규제 폐지를 공식 발표하는 대국민 메시지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200억 달러 지원과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확보한 자금을 합치면 총 320억 달러이며, 이 중 196억 달러는 즉시 집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록 대부분이 차입금이지만, 중앙은행의 금고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환전 규제부터 해제한 것이다.
밀레이 대통령과 각료들이 환전규제 폐지를 공식 발표한 후 환호하고 있다. (출처: 일간 라나시온)
온라인으로 무제한 달러 환전 가능해져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번 환전 규제 해제를 단행하면서 환전 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은행에 페소 보통계좌와 달러 보통계좌만 개설되어 있다면,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통해 얼마든지 달러를 구매할 수 있다. 이들 계좌는 누구나 개설 가능하며, 급여 수령 등 특정 용도가 없어도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일반 보통예금 계좌다.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통해 페소 보통계좌에 있는 금액을 달러로 환전하면, 환전된 미화는 자동으로 달러 보통계좌에 입금된다. 이후 은행을 방문하면 해당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거래 은행으로부터 “금액 제한 없이 달러를 구매할 수 있으며, 창구에서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다만 거액 인출 시에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니 인출 계획을 미리 알려달라”는 안내 문자를 여러 차례 받았다.
다만 현금 환전에는 제한이 있다. 현금을 들고 은행 창구에 가서 달러를 사겠다고 하면 환전은 가능하지만, 1인당 월 100달러까지만 허용된다. 결국 정부는 온라인 채널을 통한 환전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 관계자는 “범죄 수익의 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현금 환전을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환전 규제가 풀리자 공식 환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규제 폐지 첫날, 중앙은행은 급증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약 4억2,000만 달러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업의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환전 규제도 완화됐다. 일부 대기업의 예외적인 거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역 결제에 필요한 외화 환전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환율 일원화 기대감 확산
그간 환전 규제로 인해 아르헨티나에는 복수의 페소-달러 환율이 난립했다. 암시장 환율, 공식 환율 등 최소 6~7개의 서로 다른 환율이 공존하면서 외환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환전이 어려워지자 편법·우회 환전과 암거래가 성행했다.
하지만 환전 규제가 풀리면서 페소-달러 환율의 일원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암달러 환율이 하락하며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기준, 고객 매입 기준 공식 환율은 1,148페소, 암달러는 1,175페소로 거래를 마쳤다. 암시장을 찾는 수요가 크게 줄면서 최근에는 암달러 환율이 공식 환율보다 낮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암달러가 공식 환율보다 60% 이상 비쌌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변화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환율 제도 역시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중앙은행은 1,000~1,400페소의 환율 밴드를 설정하고, 상·하한선이 위협받을 경우에만 시장에 개입할 방침이다. 환전 규제 폐지 전까지는 월 1%씩 점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크롤링 페그(crawling peg)’ 제도가 시행돼 왔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