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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정전, 에너지 전환 정책 시험대에 오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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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최지윤(스페인)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최대 12시간 동안 전력망이 마비되면서 시민들은 전기 없이 하루를 버텨야 했다. 병원에서는 생명유지장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비상 발전기에 의존해야 했고, 교통 시스템은 도시 곳곳에서 정지했다. 지하철은 어두운 터널 안에 멈춰섰으며, 일부 시민들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채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슈퍼마켓, 은행, 주유소 등 모든 상업시설이 문을 닫았고, 카드 결제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면서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물품을 구매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전 당시 말라가 라리오스 거리의 모습. 스페인의 대표적인 중심가인 말라가 라리오스 거리가 정전으로 어둠에 잠긴 모습. (출처: 20minutos)
이는 국가 재난 사태였으나, 스페인 정부는 여전히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라 라손(La Razon)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87% 이상이 정전의 재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사이버보안 및 기술 방어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52.9%가 즉각적인 확대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스페인 정부는 대정전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기술적 결함 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정부가 정확한 원인을 회피하거나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전 직후 정부는 민간 사업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 집중했으며, 국가 전력망을 단독으로 운영하는 전력망 공사인 레드 엘렉트리카(REE)의 대응 및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페인 정전 당시 전력 수요 변화. 실제 전력 수요는 오후 1시 35분경 10,480MW까지 급감하며 전력망이 붕괴되었고, 이후 수요와 공급 간 격차는 수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출처: Statista)
언론에 따르면, 이번 정전은 총 세 차례의 이상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스페인 남부 지역에서 전력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란이 발생했고, 이어 남서부 지역에서 두 차례의 추가 이상 현상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시스템은 처음 두 건의 충격은 견뎌냈으나, 세 번째 이상 현상을 막지 못하면서 전력망 전반으로 문제가 확산되었다. 에너지전환부에 따르면, 이 모든 과정은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당시 전체 전력 소비량의 60%에 해당하는 약 15GW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일부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상 기후가 이번 정전의 배경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정전 당일 갑작스러운 강풍과 태양 복사량 급증 등 비정상적인 기상 조건이 전력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공유되고 있다. 프랑스 전력송전공사(RTE)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복잡한 정전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이르며, 자연환경 변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부 시민과 언론은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까지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관련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정전은 스페인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베리아 반도의 전력망은 포르투갈과 사실상 통합되어 있으며, 프랑스와도 여섯 개의 송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전이 발생했을 당시 프랑스-스페인 간 연결 송전선은 자동으로 차단되었는데, 이는 유럽 전력망 전체로의 확산을 막기 위한 보호 장치에 따른 조치였다. 이는 유럽 전체가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실에서, 한 국가의 사고가 곧 유럽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프랑스 전력송전공사(RTE)는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현상은 프랑스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태 진정 이후 프랑스는 스페인으로의 전력 공급을 재개하였고, 이는 스페인 전력망 복구의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 전력송전공사(RTE)와 터키 전력송전공사(TEIAS) 등은 주파수 불안정, 관성 부족, 인버터 결함 등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하며, 원자력과 같은 안정적인 기저 발전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전력송전공사는 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중심 시스템은 기술적 안정성 측면에서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스페인 간 송전 용량의 제한이 정전 확산 방지에 걸림돌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프랑스는 자국 전력망 보호를 위해 스페인과의 연결을 차단하였고, 그 결과 이베리아 반도는 전력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전 직전 스페인의 전력 생산 중 약 83%가 재생에너지였으며, 포르투갈은 무려 92%에 달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 관성을 제공하는 발전 장치의 수가 극히 적었다는 점이다. 관성 부족은 주파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이는 시스템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터키 전력송전공사(TEIAS)는 정전 발생 약 2시간 전부터 미세한 주파수 이상 진동이 감지되었으며, 이 진동이 인버터 불안정성과 결합해 송전망 전반에 부담을 주었고, 결국 시스템 붕괴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유럽 송전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ENTSO-E)의 기술 가이드라인과도 일치하는 평가다.
스페인의 발전 설비 구성 비율 (2024년 기준). 전체 설비의 66%가 재생에너지 기반이며, 태양광과 풍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출처: REE)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력망 공사(REE)의 기술자들은 수년 전부터 에너지 저장 용량 확보와 국가 간 전력망 연결 강화를 필수 과제로 경고해 왔다. 스페인 전력망 공사의 2020년 내부 보고서와 2025년 CNMC(국가시장경쟁위원회)의 전압 관련 분석 등은 일관되게 재생에너지 편중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경고에 미온적으로 대응하였고, 심지어 대정전 발생 3주 전에도 “정전 위험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오히려 전력망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 가동 중인 5기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 연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체스 총리는 “이번 사태는 신재생에너지 과잉이나 원전 부족 때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정전의 원인을 재생에너지와 연결 지으려는 야당의 시도를 정쟁화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이 실질적인 대안 제시 없이 논쟁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현재 보수 야당과 일부 지방 정당(Junts, ERC)은 원전 수명을 50년 이상 연장할 것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원전 의존도가 높은 카탈루냐 지역에서는 특히 원전 유지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현재 스페인은 2035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전면 폐쇄한다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의 탄소중립 목표와 궤를 같이하며, 산체스 정부가 설정한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Net Zero, 넷제로) 달성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이 폐기물 처리 문제, 높은 운영 비용, 사고 위험 등을 동반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스페인 내에서는 반핵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이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당(PSOE)을 중심으로 한 좌파 연립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여 탈원전을 핵심 에너지 공약으로 채택하였고, 이에 따라 원전 단계적 폐쇄 일정이 수립되었다.
스페인 원자력 발전소의 위치 및 운영 현황. 빨간색은 현재 운영 중인 시설, 노란색은 영구 가동 중단된 시설, 파란색은 해체 중인 시설, 회색은 비활성화 상태의 시설을 의미한다. (출처: noticiasdealava.eus)
현재까지의 계획에 따르면, 2027년부터 2035년까지 총 7기의 원자로를 순차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전력망 불안정성, 전기요금 급등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 폐쇄 일정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 탈원전에 협조하였던 일부 전력회사들도 최근 입장을 선회해 일정 유예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산업계와 보수 야당 역시 원전의 역할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스페인의 폐쇄 예정인 원전은 다음과 같다:
(출처: noticiasdealava.eus)
이미 폐쇄된 원자력 발전소로는 2006년에 가동을 중단한 Zorita, 1990년 화재로 폐쇄된 Vandellós I, 2023년 해체 작업이 시작된 Garoña, 그리고 ETA(바스크 무장단체)의 테러로 인해 완공 직전 중단된 Lemoiz 등이 있다. 현재 스페인 정부는 2035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정치권과 산업계 안팎에서는 이 계획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전력회사들과의 합의,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국제적 탄소 감축 목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폐쇄 일정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따라서 향후 몇 달간의 논의 결과에 따라 원전 폐쇄 계획이 일부 수정될 여지도 존재한다.
스페인은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높은 수입 의존도는 글로벌 시장의 불안정성과 맞물려 국내 전력망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원자력 발전소 운영사들은 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규제가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 이베르드롤라 회장은 “원전 폐쇄는 전기요금 25%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미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비중이 커질수록 시스템은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스페인처럼 전력 자립도가 낮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기술적 보완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 데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잉여 전력의 폐기, 관성 없는 구조, 송전망 과부하, 출력 조절 불가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유발하며, 이는 결국 전력망 전체의 신뢰도를 저하시킨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풍력과 태양광 설비는 토지 점유율이 높고, 수명 관리 및 유지비 증가 등 환경적·경제적 측면의 이슈도 수반한다.
이번 스페인 대정전 사태는 유럽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을 검토 중인 한국 기업들에게도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 변화가 에너지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전기요금 급등이나 정전 리스크가 제조업 및 ICT 인프라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정책 변화의 불확실성과 행정 대응의 신뢰성 부족은 기업 활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스마트팩토리, 반도체, 배터리처럼 전력 품질이 곧 생산성과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이 더욱 민감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유럽 내 사업장 위치를 선정할 때, 에너지 인프라 접근성이나 정책 변동성과 같은 요소를 면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와 전력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이다. 이번 사태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기를 맞이한 각국이 교훈 삼아야 할 사건으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간의 균형 있는 정책 설계, 기술 투자, 위기 대응 체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