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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을 맞은 인도네시아의 내각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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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배동선(인도네시아)


2024년 10월 20일 쁘라보워 수비안토 제8대 인도네시아 대통령 취임 

(출처: 인도네시아 국무부 포토갤러리)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를 통치해온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10월 20일 퇴임하고,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연정에 참여해 국방장관을 지내며 우여곡절 끝에 후계자로 낙점된 쁘라보워 수비안토가 마침내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쁘라보워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문에 들어선 후, 군생활의 대부분을 인도네시아가 강점했던 동티모르에서 보내며 반군들과의 실전 경험을 쌓았다. 초급 장교 시절, 니콜라스 로바토 동티모르 제2대 대통령을 교전 중 사살한 작전에 기여하며 수하르토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이후 수하르토의 사위가 되어 정권 핵심부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특전사령관과 육군전략예비사령관(중장)까지 진급했으나, 1998년 민주화 시위와 자카르타 폭동의 혼란 속에서 수하르토가 하야하면서 그의 군생활도 막을 내렸다. 쁘라보워는 한동안 요르단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귀국 후 그는 정계에 진출해 그린드라당을 창당하고, 메가와티 수카르노뿌트리의 부통령 후보로, 그리고 2014년과 2019년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모두 낙선했다. 그러나 2024년 2월, 현직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선에서 승리하며, 수하르토 하야 이후 26년 만에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8개월간의 정권 인수 과정을 거쳐 10월, 그는 제8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쁘라보워는 수하르토의 딸 띠띡 수하르토와 1998년 이혼했지만, 디자이너로 성장한 아들 디딧(Didit)을 사이에 두고 전처와 여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혼이 수하르토 정권과의 단절을 가장한 ‘위장이혼’이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띠띡은 한 차례 골카르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이번에는 쁘라보워의 그린드라당 공천을 받아 지난 10월 1일 두 번째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했다.

 

쁘라보워 수비안토의 대통령 취임은 일부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만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취임을 두고 ‘수하르토 철권통치 시대의 재림’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그는 취임 당일 밤새 정부 장·차관 명단을 발표하고, 그 주 주말에는 100명이 넘는 장·차관을 중부자바 마글랑(Magelang)의 육군사관학교로 소집해 군복을 입히고 3박 4일간 집체 교육을 진행하는 이색적인 방식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11월 7일에는 장관과 기관장, 전국 지자체장 등 5,000명 이상을 자카르타 남쪽 센뚤(Sentul)로 불러 국정 기조를 설명하는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쁘라보워 대통령의 군대식 성향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글랑 육군사관학교에서 군대식 집체교육 받는 새 정부 장차관들 

(출처: 인도네시아 국무부 포토갤러리)

 

과거 수하르토가 현역 군인들에게 정부와 민간부문의 요직을 나누어 주던 방식을 쁘라보워가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는 자신의 후임 국방장관에 군 시절 절친이었던 샤프리 샴수딘 예비역 중장을 임명하고, 일부 군경 장성들을 입각시키면서 현직 장성들 중 일부를 전역시켰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 그는 기본적으로 실무형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48명의 장관들을 살펴보면 꼭 그 방침이 철저히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문화부는 관광창조경제부에서 분리된 창의경제부와 교육문화연구기술부에서 분리된 부처로 나뉘었다. 그러나 창의경제부 장관 뜨꾸 리프키 하르샤와 문화부 장관 파들리 존은 모두 문화 관련 전문성이 없는 정치인들이다. 다만, 해당 부처의 차관들은 각각 게임회사 CEO와 배우 겸 가수 출신이어서 실무는 차관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48개 부처의 구성은 쁘라보워 정부가 향후 어떤 정책 방향을 추구할지 가늠케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인도네시아 내각에는 '조정장관'이라는 독특한 직책이 존재한다. 조정장관은 여러 부처를 총괄하고 조율하며, 일종의 '장관 위의 장관' 역할을 한다.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여러 조정장관 중 해양투자조정장관 루훗 빈사르 빤자이탄 예비역 육군대장이 대통령의 민간인 시절 사업 파트너로, 내각과 정국을 주도하는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다.

 

2024년 2월 대선에서 투쟁민주당(PDIP)의 간자르 쁘라노워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던 마흐푸드 MD는 법무부와 내무부를 총괄하는 정치사법치안보조정장관으로 임명되어 내각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게 됐다.

 

이번 쁘라보워 정부 내각에서는 조정장관 부처가 이전 정권보다 두 곳 늘어나 총 7개로 확대되었다. 이 외에도 조정장관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조정장관과 유사한 권한을 가진 독립 부처로 재무부와 국무부가 있다. 또한, 국가경영과 직접적인 관계는 다소 떨어지지만 행정개선관료개혁부와 국가개발기획부 같은 부처들도 포함되어 있다.

 

재무부는 조코위 정권 10년 동안 재무장관을 맡아온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전 세계은행 총재가 이번 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임됐다. 그러나 이번 내각에서는 그녀를 보좌하는 차관 3명(그중 한 명은 쁘라보워의 조카)과 청장급 국장 9명이 추가 배치되었다. 스리 물야니 장관은 독립적이고 원칙적인 자세로 재무부를 운영해 왔으나, 이러한 보좌진의 배치는 장관의 결정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는 쁘라보워가 취임 전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사가 국가 재무를 맡아야 한다"고 언급했던 맥락과 일치한다.

 

국무부는 조코위 대통령의 모교인 가자마자 대학교 총장 출신 쁘라띡노가 지난 10년간 이끌며 대통령의 왼팔로 활약했다. 이번 정권에서 그는 인간개발문화조정장관으로 영전해 내각에 남았고, 그의 후임 국무장관 쁘라스티요 하디는 내각 사무처를 흡수해 국무부의 위상과 역할을 더욱 강화했다. 45세의 젊은 그린드라당 소속 쁘라스티요는 대통령의 새로운 왼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내각은 7개의 조정장관 밑에 예외적인 독립 부처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37개 부처가 소속되는 구조를 가지며, 각 부처의 역할과 책임이 조정장관 체제 하에 명확히 배분되었다.

 


일각에서는 쁘라보워 대통령이 방대한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선진인도네시아연대(KIM) 정당연합 소속 정당들(그린드라당, 골카르당, 국민수권당(PAN),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선 당시 상대 진영에 속했으나 정국 안정을 위해 연정에 참여한 대부분의 원내 정당들에게 요직을 골고루 나누어 주기 위해 자리를 늘린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9명으로 제한되었던 대통령 자문위원회 역시 인원 제한이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공을 세운 인사들 중 여전히 자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대선 이후 공기업 대표와 임원직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번 내각은 전 정권의 34개 장관부처를 48개로 늘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 부처들이 제 기능을 하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내각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부처 증가의 대부분이 새로운 부처를 신설하기보다는 기존의 9개 부처를 21개로 분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부처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있다. 조코위 정권 말기에도 부처 간 충돌과 반목이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사례로, 부품 국산화율(TKDN)과 공산품품질표준(SNI) 문제로 산업부와 무역부가 충돌하며 자카르타 딴중쁘리옥과 수라바야 딴중뼤락 등 주요 항구에 수만 개의 컨테이너가 적체된 사건이 있다. 이는 부처 간 상충하는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 조코위 정권 말기 법무인권부 산하 이민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세컨드홈 비자와 골든 비자 등 새로운 체류 조건을 발표했으나, 투자조정청(BKPM)이 정한 최소 투자액 10억 루피아(약 8,700만 원)를 이민국이 일방적으로 100억 루피아(약 8억 7,000만 원)로 인상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사건이 있다. 이로 인해 부처 간 갈등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민국장이었던 실미 까림은 이 사건을 통해 정권의 눈에 들어 이민교정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창의경제부와 문화부의 관계도 복잡하다. 창의경제부는 조코위 정권 초창기인 2015년 설립된 창조경제위원회(Bekraf)를 모체로 하지만, 이후 조코위 대통령이 신수도 이전 등 토건 사업에 집중하면서 문화 정책이 소홀해지며 축소되었다. 이후 관광부에 흡수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분리되어 장관부처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창의경제부와 문화부 간의 정책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긴밀히 협력해야 하지만, 인도네시아 공직 문화 특성상 협력보다는 충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욱이 두 부처는 서로 다른 조정장관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

 

출범 초기부터 내각 효율성 문제를 제기받고 있는 쁘라보워 정부는 장관들의 실적을 주기적으로 감독하고 평가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은 각 장관들에게 취임 첫 100일 안에 성과를 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장관들은 관련 기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부의 나탈리우스 삐가이 장관은 배정된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다며 30배 증액을 요구했고, "100일 계획이 아니라 5년 계획을 세웠다"고 반발하며 대통령에게 이례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임명된 지 3주도 되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과 대립한 그의 행보는 상당히 아슬아슬해 보인다.

 

 나탈리우스 삐가이 인권부 장관 

(출처: TvOnenews.com)

 

기왕에 대통령이 장관들의 전문성과 능력을 강조한 만큼,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장관들은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은 국회 최대 의석 정당인 투쟁민주당(PDIP)이 조만간 연정 참여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현재 8개의 장관직을 차지한 골카르당보다 더 많은 장관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규모 개각이 예상보다 이르게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첫 100일 동안 각 장관들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쁘라보워 대통령이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투쟁민주당이 실제로 연정에 참여할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