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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탈규제부까지 설치하고 규제 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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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손영식(아르헨티나)

 

 

국가가 각종 규제를 동원해 경제에 무리하게 개입하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시장경제가 힘차게 굴러가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거시경제학 입문서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원리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 아르헨티나 집권 세력은 이를 몰랐거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것 같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 국민은 긴 시간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원성이 자자했던 아르헨티나의 임대차보호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아파트에 임대 간판들이 설치돼 있다.

(출처: 엘크로니스타)

 

 

최악의 임대차보호법 만든 페론당 정부

 

아르헨티나가 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한 건 2020년 6월이다. 당시 집권당은 무한리필 식 퍼주기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받는 페론당이었다. 행정 권력과 의회까지 장악하고 있던 집권당인 페론당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대차보호법 입법을 밀어붙였다.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페론당이 고집한 입법 명분이었다. 

 

문제의 임대차보호법은 상업용이나 주거용이나 부동산의 용도를 가리지 않고 임대차계약의 기간을 최저 3년으로 규정했다. 그때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법이 강제하는 주거용 부동산의 임대차계약 최저기간은 2년이었다. 임차인에겐 주거 안정이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임대인에겐 강제 기간이 1년 늘어난 것이다. 임대인이 반길 리 없는 규정이었다. 

 

또한 임대차보호법은 계약 기간 중 임대료 조정(인상)을 연 1회로 제한했다. 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임대료 조정은 계약의 자유 원칙에 따라 쌍방이 합의하면 그만이었다. 6개월마다 임대료를 올리든, 분기별로 임대료를 인상하든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의하면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었다. 2020년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연 35%대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막 접어들고 있었다. 임대차계약을 맺을 땐 계약 1년 차 ○○페소, 계약 2년 차 ×× 페소 등으로, 구체적으로 금액을 명시하거나 3~6개월 단위로 소비자물가지수에 맞춰 임대료를 인상한다는 연동제 조항을 넣는 게 보통이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 인상을 연 1회로 제한하는 한편 인상률은 중앙은행이 발표하는 지수에 연동하도록 강제했다. 결국 다시 한번 울상을 짓게 된 건 제때 계약의 자유가 제한된 임대인들이었다. 현지 언론에는 세계 최악의 임대차보호법이라는 혹평이 쇄도했다. 

 

 

심각한 부작용… 월세 물건 씨가 마르다

 

논란이 될 조항이 수두룩한 임대차보호법이 발효되자 부작용이 현실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대인들이 “이런 식으론 계약하지 않겠다”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시장에 내놨던 월세 물건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인들은 거둬들인 부동산을 단기임대로 돌렸다.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은 공유숙박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임대인들은 전통적 방식(계약)으로 세를 놓는 것보다 훨씬 높은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남미의 파리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 연방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아파트 월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어졌다. 한때 현지 언론에는 “인구 350만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임대차 시장에 나와 있는 아파트가 채 100채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연이어 나올 정도로 월세 물건은 씨가 말랐다. 부동산중개업소엔 아파트 월세를 원하는 대기자 명단이 등장했고 물건이 나오면 아파트를 보지도 않고 일단 계약부터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반시장적 법이 아르헨티나 임대차 시장에 일대 파장을 일으킨 셈이다.

 

 

새 정부, 출범 열흘 만에 법 폐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임대차보호법을 단번에 폐지한 건 지금의 아르헨티나 정부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는 출범 열흘 만에 의회법과 비슷한 법적 지위를 가진 긴급필요대통령령을 발동, 임대차보호법을 폐지했다. 

 

제정 후 부작용이 나타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처럼 악성종양 같던 존재를 제거하자 임대차 시장은 금세 회복됐다. 통계를 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장에 나온 월세 물건은 올해 들어 170% 증가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월세를 구하는 건 쉬워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치대에 다니기 위해 장장 18개월 동안 아파트 월세를 찾아 발품을 팔았지만 구하지 못했다는 대학생 알다나 올리베르(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까지 집을 못 구했다가 임대차보호법 폐지 직후 월 200달러(한화 약 28만 원) 정도를 주고 정말 마음에 드는 월세 아파트를 구했다”며 지난해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임대료도 낮아지는 추세다. 물론 명목가격 기준으론 임대료가 오르고 있지만 실질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임대료는 지난해 10월과 비교할 때 최고 40% 내려갔다는 시장조사 보고서가 있다. 

 

 

수입 관련 규제도 푸는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는 최근 수입인지 폐지를 공식 발표했다. 1987년 도입된 규제에 따라 아르헨티나에선 수입 전자제품, 의류, 악기 등에 우표처럼 생긴 수입인지를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했다. 정부는 수입인지의 부착을 강제하는 게 비용 상승만 유발할 뿐 실효는 없다고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세관 고위 관계자는 “수입품의 추적이 가능한 상품 식별 체계(IMEI)가 있어 굳이 수입인지를 붙이도록 하지 않더라도 수입품 관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밀레이 정부가 폐지를 결정한 수입인지.

(출처: 클라린)

 

 

밀레이 정부는 기준가격 제도도 폐지했다. 타이어, 완구, 플라스틱, 강철, 원단 및 원사, 의류 등이 폐지 대상이다. 기준가격은 송장 조작을 통한 탈세 등 수출입과 관련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가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수입업체가 세관에 신고한 수입 가격이 세관의 기준가격보다 낮으면 문제의 수입 상품은 일명 ‘레드 채널’로 들어간다. 

 

예컨대 A 상품이 100달러(한화 약 14만 원)에 수입됐다고 하자. 수입업체가 신고한 수입 원가는 100달러지만 세관이 정한 기준가격이 200달러라면 A 상품은 통관절차가 한층 까다로운 세관의 레드 채널로 들어간다. 레드 채널에서 통관은 기간의 제한이 없다. 한 번 레드 채널로 들어가면 언제 통관이 완료될지 알 수 없어 수입업체는 마냥 기다리며 한숨만 내쉬게 된다. 

 

통관 절차가 진행된다고 해도 부담이다. 레드 채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보험회사가 보증금을 걸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보증금은 수입원가의 1%다. 수입업체 입장에선 통관 지연과 보증제도로 이중으로 비용이 상승하는 셈이다. 세관은 “결국 수입업체에 추가 비용이 발생해 원가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

(출처: 라나시온)

 

 

“규제 있는 곳에 부정부패가 있다”

 

취임하면서 곧바로 바로 공공부문 개혁에 나선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부처를 18개에서 9개로 확 줄였다. 그런 밀레이 대통령이 신설한 부처가 있다. 바로 탈규제ㆍ변혁부다. 수입인지와 기준가격 폐지를 발표한 건 경제부가 아닌 탈규제ㆍ변혁부였다. 

 

페데리코 아돌포 스트루세네헤르 탈규제ㆍ변혁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기준가격 제도를 폐지해도 송장 조작이나 탈세를 걸러낼 수 있겠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법을 어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를 경계하기 위해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에게 불편을 주어선 안 된다고 본다”며 “세관의 기본적 기능이 있어 (수입인지와 기준가격을 폐지해도) 단속과 탈세 방지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밀레이 대통령의 소신을 반영하는 설명이라고 해석했다. 시장경제 신봉자를 자처하며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밀레이 대통령은 규제에 체질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규제가 있는 곳엔 부정부패가 싹튼다는 것이 밀레이 대통령의 신념적 철학이다. 실제로 회견에서 스트루세네헤르 장관은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최고의 정책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라며 “관료주의적 프로세스를 두는 건 곧 부정부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수출에 대한 규제 완화도 준비 중이다.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게 기본 취지라고 한다. 

 

밀레이 정부는 과거 아르헨티나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선택과 결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이 아니라 30년 뒤 후손이 잘사는 국가를 만들겠다며 정권을 잡은 밀레이 정부의 실험 같은 개혁이 어떤 성과를 낼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올해 물가를 얼마나 잡을지 단기적 관전 요소도 여럿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