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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영화산업: 영화와 무속의 상관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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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배동선(인도네시아)
영화진흥위원회의 인도네시아 통신원으로 정기 보고서를 8년쯤 쓰다 보면 비단 영화뿐 아니라 상영관 산업, 관련 세제, 스크린쿼터, 개봉 영화를 OTT로 넘기기 전까지의 일정 유예기간의 합의인 홀드백 제도, 소극장들, 관할 부처와 정책 수립기관, 영화 관련 협회, 해외 OTT 업체들에 대한 소득세와 망 사용료 부과 같은 영화산업 이모저모에 나름 식견을 갖게 된다.
최근엔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을 중심으로 영화 평론도 쓰기 시작해 현지 교민 매체에 싣고 있다. 영화에 관한 평가보다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문화를 설명해 한국인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는 그 문화적 차이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은 2016년 영화시장을 해외 자본에 개방한 후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자카르타를 포함한 전국 133개 도시에 450개 가까운 극장과 2,200개 넘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1년에 100편 넘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2억 7,000만 명이 넘는 인구에 비해선 스크린이 적은 편이지만 관객들은 꾸준히 늘어 2019년 이후 5,0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로컬영화를 보았고 할리우드 포함 수입 영화 관객들을 포함하면 연간 관객은 1억 명을 상회한다.
인도네시아 전국 상영관 현황 (출처: CGV 시네마스 제공 (2024. 4. 19))
위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CGV는 현지 상영관 산업 2위 사업자다. 하지만 1위 사업자인 시네마 21과는 차이가 크다. 시네마 21은 1980년대에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촌이 만든 극장 체인으로 당시 수많은 독립 영화관을 고사시키고 전국 영화시장을 독점하다가 1998년 수하르토가 하야하고 개혁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영관 시장도 점차 현재의 독과점 형태로 굳어졌다.
그간 CGV가 매달 2~3편의 한국 영화를 수입해 현지에 소개했지만, 한국 천만 관객 영화들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부산행>(2016), <군함도>(2017) 같은 영화가 나름 선전한 결과 20만 명가량 현지 관객들이 들었고 <기생충>(2019)은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작품상 후광에 힘입어 60만 관객을 간신히 넘었다. 한국 드라마가 한류를 타고 인도네시아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 영화는 그 정도로 각광을 받진 못했다. 그것은 영화 전반에 깔린 한국적 정서가 인도네시아인들의 그것과 조금 어긋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 원작보다 리메이크들이 선전했는데 <써니>(2011)의 리메이크 <베바스(Bebas)>, <수상한 그녀>(2014)의 리메이크 <스위트 20(Sweet 20)>에 백만 명 이상 관객이 들었고 <7번 방의 선물>(2013)의 리메이크는 2022년 무려 580만 명 넘는 관객이 들어 그해 로컬영화 흥행 순위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한국 원작 영화의 현지 흥행이 저조한 근본적인 원인은 전국 상영관과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시네마 21이 한국 영화를 걸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경쟁사 수입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관객이 잘 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23년 할리우드 파업이 시작되면서 극장에 걸 만한 영화들이 양적, 질적으로 줄어들자, 시네마 21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귀공자>, <더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한국 영화 세 편을 받아 상영했고 이중 <귀공자>와 <더문>은 각각 24만 명, 36만 명의 현지 관객들이 들며 <기생충> 다음으로 현지에서 가장 크게 흥행한 한국 영화가 되었다. 시네마 21 극장 체인이 해당 영화들을 걸어준 것만으로 나온 결과이므로 점유율의 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네마 21과의 첫 거래는 이듬해인 2024년 <파묘>가 현지에서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거두는 토대가 되었다.
2024년 이례적 흥행 영화
2024년 상반기에 인도네시아 상영관에는 네 편의 영화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2월에 현지 개봉한 한국 영화 <파묘>였다. 특이하게도 싱가포르의 영화수입상 퍼플 플랜(Purple Plan)이 동남아 판권을 사와 인도네시아에는 CGV가 아닌 시네폴리스(Cinepolis) 체인의 수입사인 피트 픽쳐스(Feat Pictures)를 통해 배급했는데 당시의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얻으며 <기생충>도 가보지 못했던 26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가장 한국적인 토속 무속이 인도네시아인들을 사로잡았다.
시네마 21이 상영에 참여했다거나 당시 할리우드 파업으로 볼 만한 다른 영화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는 <파묘>가 한국 영화들이 이전엔 상상도 못 해본 숫자의 현지 관객을 들인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그 이상의 영화적 요소, 영업적 원인을 찾아내 연구한다면 다른 한국 영화들도 비슷한 현지 흥행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현지에서 크게 흥행한 또 다른 수입 영화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돈 많이 벌기(How to Make Millions Before Grandma Dies)>라는 태국 영화다. 5월에 개봉한 감동적인 드라마 장르의 이 영화는 <파묘>보다도 빨리 200만을 넘긴 후 종영 전 300만 관객까지 넘어섰다. 마블 히어로 영화로 대변되는 할리우드 영화들 외에 한국이나 태국 등 아시아 영화들이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전례가 없었다.
또 다른 영화는 1월에 개봉한 <조금 달라(Agak Laen)>이라는 로컬 호러 코미디 영화다.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러니 당연히 손님 한 명 들지 않아 망해가는 ‘귀신의 집’을 정말 무섭게 개조해 떼돈을 버는 이 영화는 귀신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호러보다는 코미디 드라마에 가깝다. 절대 미남이라 할 수 없는 B급 남자배우 넷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웃음 코드를 정확히 짚어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일부 대목에서는 눈물까지 짜내면서 결과적으로 9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매년 천만 관객 영화가 두세 편 나오는 한국이라면 ‘아까비~’ 정도 외쳐주고 말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2022년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라는 걸출한 공포영화가 현지 첫 천만 관객 영화가 되기 전까지 2016년 680여만 명이 든 <귀뚜라미 보스(Jangkrik Boss)>라는 코미디 영화뿐이었다. 한국에도 이름을 알린 공포영화 거장 조코 안와르 감독의 2022년 작 <사탄의 숭배자 2: 커뮤니언(Pengabdi Setan 2: Communion)>도 640만 명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무핫끌리 아초(Muhadkly Acho)라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의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 <조금 달라>가 내로라하는 영화들을 제치고 천만 관객 가까이 간 것은 영화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앞으로 관련 연구논문이 여러 편 쏟아져 나올 만한 일대 대사건이다.
왼쪽부터 <파묘>,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돈 많이 벌기>, <조금 달라>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
2024년 상반기 주요 영화 네 편 중 마지막 한 편은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Vina: Sebelum 7 Hari)>라는 영화다. 굳이 분류하자면 귀신이 나오는 범죄영화이니 호러 스릴러라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피나에 대한 헌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을 질책하는 고발 영화의 성격이 짙다.
이 영화는 2016년 서부 자바 찌레본에서 벌어진 실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당시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차용했다. 찌레본은 자카르타에서 차로 2~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지방 도시다. 거기서 아직 고등학생이던 16살의 피나가 그녀의 애인 에키와 함께 오토바이 갱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어 한 교량 초입에 버려졌는데 경찰은 유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이를 단순 교통사고 사망으로 처리했다.
이후 사건의 전개는 사뭇 드라마틱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피나의 절친 리나가 피나의 원혼에게 빙의되어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하며 하소연한다. 그때 그 증언을 녹음한 파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반에 퍼져나가며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같으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또는 주작이라 무시했을지 모르나 많은 이들에게 귀신과 무속이 일상인 인도네시아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여론에 굴복한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 오토바이 갱단 여덟 명을 검거했는데 재판 결과 그중 일곱 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문제는 당시 오토바이 갱의 중추적 역할을 한 세 명을 놓친 것이다. 그들은 이 영화가 올해 5월 8일 개봉할 때까지 8년간 붙잡히지 않았다.
이 영화가 많은 논란을 만들며 주목을 받아 흥행하자 오랫동안 범인을 잡아들이지 못한 경찰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더욱이 영화의 말미에도 첨부된 원혼의 육성 증언(?)에서 피나를 죽인 주범은 고위 경찰관의 아들이라 말한 부분이 더욱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화가 개봉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5월 21일 경찰은 달아난 범인 중 한 명인 뻬기 스티아완을 체포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영화가 미제사건 해결에 일조한 것이다. 영화는 5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들이며 6월말 기준 2024년 로컬영화 흥행 순위 2위를 찍고 스크린에서 내려갔지만 피나 살인사건 수사 추이에 대한 기사는 이미 천 개 이상 쏟아져 나왔다.
사건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세 명의 도망자 중 두 명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경찰은 다른 두 명이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인물이라며 수배자 목록에서 지워버려 의혹을 더욱 키웠다. 일각에서는 영화 흥행으로 인한 압박 때문에 경찰이 아무나 잡아넣고 그가 진범이라 우기면서 뒤로는 원혼이 증언한 것처럼 경찰이나 권력자 집안의 아들을 아직도 애써 비호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 포스터
호러영화 전성시대
본격 호러영화는 아니라 해도 조금 거칠게 분류한다면 앞서 언급한 올해의 문제 상영작 네 편 중 세 편을 호러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놀랄 일이 아니다. 2023년엔 100만 관객이 넘은 로컬영화들이 20편 나왔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13편이 호러영화였다.
이는 호러영화라면 일단 보러 가는 인도네시아 관객들 다수의 집단적 취향을 반영한다. 그래서 귀신이 한번 나와 주면 최소한 제작비는 건지는 경우가 많아 인도네시아인들의 호러영화 선호 경향이 최근 호러영화 양산사태의 배경이 되고 있다
물론 다른 장르의 영화들이 지지부진한 것은 아니다. 늘 좋은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들이 흥행작 중에 꼭 끼어 있다. 하지만 호러영화들이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구원자란 점은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마치 드라마 연속극들이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덕분에 해당 TV 방송국들이 광고도 내고 축구 중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러영화들이 안정적 숫자의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어 그 덕에 상영관들이 선호도가 조금 떨어지는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스크린에 올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영화제작사 입장에서도 많은 관객이 들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 큰 이익을 내는 영화들이 많이 나올수록 더 많은 다른 영화들을 제작할 수 있고 상영관 체인들도 극장 네트워크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소한 지금은 호러영화가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심장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조금 달라>나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 같은 영화들이 호러영화의 형식을 띤 것도 인도네시아인들의 호러영화 선호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불륜, 효심, 성공욕, 과시욕 등을 배경에 깔고 있는 <조금 달라>는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드라마 형식이 될 수도 있었고 붙잡히지 않은 악당들의 검거와 응분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은 본격적인 수사물이나 액션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귀신을 등장시키며 호러의 색채를 덧씌웠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한 ‘기도의 방향’이란 의미의 제목을 가진 공포영화 <키블랏(Kiblat)>이 올해 이슬람 단체들의 철퇴를 맞고 영화검열위원회 심사마저 통과하지 못하면서 인도네시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절대 이겨낼 수 없는 ‘신성모독’이란 전가의 보도가 호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목을 겨눴다. 호러영화가 여전히 대세인 인도네시아에서 점점 근본주의 성격을 보이는 보수 이슬람은 영화감독들의 창의력, 표현의 자유 등과 충돌하며 앞으로도 적잖은 파장과 후유증을 불러올 것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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