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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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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권영일(미국) 

 

 레베카(35)는 최근 첫 아이를 출산했다.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빨랐지만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했다. 이에 앞서 그녀는 예정일보다 한 달 전 출산 휴가를 신청했다. 과중한 근무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공서나 대기업 직원들은 보통 3개월 정도의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용 기간은 산모의 선택에 따라 융통성이 있다.

 

 그러나 100% 유급 휴가는 아니다. 휴가 후 첫 두 달 동안은 급료의 80%를, 3개월째는 60%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좀 더 쉴 수는 있으나 그 이후는 무급이다. 물론 각 주마다, 그리고 직장에 따라 혜택은 다르다. 레베카의 경우, 남편도 한 달 정도 유급 휴가를 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병원비는 100% 본인 부담이다. 다행히 그녀의 보험회사에서는 병원비를 전액 보상해준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없으면 출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딸 엘리노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울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선다. 당장 어린이집(day care)에 보낼 수 있는 생후 18개월까지는 자식을 돌보는 것이 큰 문제다. 미국 가정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어 전문 돌봄이가 필요하다.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특별히 연방정부나 각 주에서 출산을 위해 보조해주는 혜택은 없다.

 

 레베카는 고심 끝에 친정 어머니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비용도 문제지만,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정책으로 저출산 위기 돌파

 

 이처럼 미국에서도 자녀를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자녀를 가지려는 젊은 부모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로, 미국은 전 세계 243개국 가운데 출산율이 낮은 하위 49개국에 속한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출산율은 2021년 1.66명으로 인구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인 출산율 2.1명보다 이미 크게 낮다. 인구 수도 3억 3,144만 9,281명으로 10년 전보다 불과 7.4% 증가했다. 이는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7.3%)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증가율이다.

 

 그렇지만 2024년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저출산 패닉'은 아직 없다. 이는 이민자가 인구 감소분을 메우고, 지속적으로 생산가능인구를 보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1위의 ‘이민 경쟁력’으로 양질의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이민 문호는 경제 상황, 실업률이나 일자리 형편에 따라 연방정부가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는 이민자가 해마다 0.3%씩 꾸준히 늘어 전체 인구 감소를 막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민자 수 증가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인종차별과 갈등 문제가 종종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포용적 이민자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단했던 멕시코 국경의 이민 문호를 쉽게 열지 못하는 것도 사회적 갈등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문호 개방 정책이 대세다. 특히 민주·공화 양당은 저숙련 이민자 유입에 대해서는 각각 찬반으로 갈리지만, 양질의 이민자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유입 확대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전공자는 졸업 후 3년간 미국에 머물 수 있고, 취업 후 H1B 비자를 받으며 미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반이민 정책을 펼쳤던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에도 STEM 전공자들은 환영을 받았다.

 

 이처럼 미국은 이민을 ‘장기적 투자’로 접근한다. 이민자의 2세, 3세대를 미국 시민으로 육성하면 국가 이익이 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불법 이민자의 자녀들도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학교에서는 학업과 별도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

 

출산을 유도하는 사회분위기

 

 이민이 저출산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인구 소멸'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현지사회의 제도와 분위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사회는 ‘대도시로, 명문대로 가는 좁은 구멍을 뚫어야만 한다’는 ‘초경쟁’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경쟁에 질식해 출산을 포기하는 ‘심리적 거부감’이 적다는 뜻이다. 특히 ‘패자부활전’의 용인은 미국 사회의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지인의 소개로 애틀랜타의 한 커뮤니티 컬리지(community college)에 입학, 졸업한 후 미국의 명문 조지아공과대학(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편입했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의 학점이 모두 인정된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재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사회의 장점이다.

 

 직장 내 양육문화도 개방적이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아이 문제만큼은 우선적으로 양해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워싱턴 DC의 한 정부 기관에 재직 중인 A씨는 “미국도 상위 1%는 한국보다 더 힘들게 일한다”면서, “아이 때문에 쉬거나 조퇴하려면 상관이 눈치를 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 밀린 일을 하든지, 미안한 마음에 도넛을 사 가는 정도이지 압력에 말도 못 꺼내는 일은 없다. 직장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자녀 문제로 조퇴를 하거나 전날 휴가를 내도 '타인의 시선 압박'이 덜한 것은 분명하다.

 

 아마존에 근무하는 B씨는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필요한 픽업 시간에 대해서는 팀원들이 묵시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며, “이 시간대를 빼고 미팅이나 회의를 잡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매너”라고 말했다. 가정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돌봄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은 일과 동등하게 중요할 수 있다는 존중이다. 동료 직원이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력 단절도 미국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공교육이 시작되는 만 5세 이전까지 모든 돌봄 비용은 가정이 부담한다. 특히 취학 전 아동들의 프리스쿨(pre-school) 학비는 부담이 크다. 주마다 차이는 있으나 월 2,000달러 이상의 수업료 부담과 높은 베이비시터 비용은 만만치 않다. 유치원(kindergarten)도 정부 보조는 없고, 전액 수업료를 내야 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도 돌봄 초기 부모의 경력 단절도 흔하다. 그렇지만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기업에서 경력 공백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주변에 아이 2~3명을 키우는 젊은 워킹맘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또 출산 경험이 없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가지는 데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미국에서 가정과 자녀는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경제 여건에 따른 선택지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이자 목적이며 행복이라고 믿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미국 사회는 정치인, 경제인, 정치 행태와 시장 경제 운용에 이르기까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을 높이고 존중한다.

 

 그 결과 미국의 출산율은 인구 절벽을 느낄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 저출산을 막는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출산에 대해 긍정하는 사회적 합의와 분위기 조성이 먼저라는 것을 미국 사회는 보여주고 있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1. 미국의 인구전망:2023 ~2053

 

<자료 제공 : 미 연방의회 예산국>

 

 

 

<사진설명> 미국 학부모들도 본격적인 공교육이 시작되는 만 5세 이전까지 모든 돌봄 비용은 가정이 부담한다.

유치원(kindergarten)도 정부 보조는 없고, 전액 수업료를 내야 한다. (사진- Education Week 홈페이지 사진 캡쳐)

 

 

 

미국도 다른 선진국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인구절벽은 아니다. (사진- 뉴욕보람보육원 홈페이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