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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저 출산율 스페인, 저출산 극복 해법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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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최지윤(스페인)
대한민국은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을 기록하며 세계 출산율 최하위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는 OECD 주요 회원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인 1.58명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어느 나라도 출산율이 1명 아래인 곳은 없다. 출산율 현상 유지나 소폭 반등은커녕, 곤두박질친 출산율은 2018년 이래로 1명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고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일까? 여러 전문가는 입을 모아 21세기 말에는 세계 많은 국가에서 인구 감소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한다. 한국과 같이 최저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는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이 있다. 2023년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을 보면 꼴찌인 한국 바로 위에 있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인구 4,859만 여 명으로 한국과 인구수가 비슷한 스페인은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한국만큼 심각한 저출산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출산율이 최대 3명대를 기록했던 스페인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출산율이 대폭 하락했다.
지난 10년간의 스페인 출산율 추이 그래프. 출처=20minutos.es
2023년 스페인의 출생아 수는 322,075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출생아 수는 약 24% 감소했으며,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또한, 스페인의 평균 출산 연령이 점점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1981년 평균 출산 연령은 28.2세였던 반면, 2021년 평균 출산 연령은 32.6세로 높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40세 이상 산모의 출산 비율도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40세 이상 산모의 출산은 19.3% 증가했으며, 작년 기준으로 25세 미만의 산모(9.4%)보다 40세 이상의 산모(10.7%)가 더 많았다. 30~39세 사이 산모의 출산은 62.5%를 차지하여 스페인의 임신, 출산 연령이 늦춰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0세 이상 산모의 출산 비율은 그리스(9.7%), 이탈리아(8.7%), 포르투갈(8.5%) 등 다른 남부 유럽 국가와 비슷하나 프랑스(5.1%)보다는 두 배 높은 수치이다.
스페인의 저출산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가장 주된 이유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을 수 있다. 2021년 스페인 통계청(INE)에서 발표한 평균 연봉은 25,896유로(약 3,819만원)이다. 같은 해 국세청에서 발표한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은 4,024만원이었다. 한국과 스페인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도 거의 같을 정도로 경제 규모가 비슷한 수준이다. 평균 연봉에 있어서도 큰 차이는 없으나 스페인의 생활 물가는 예상보다 비싸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의 부가가치세는 10%지만, 스페인의 부가가치세는 21%나 된다.
스페인 맥도날드의 빅맥 세트 가격(왼쪽)과 기타 세트 메뉴(오른쪽)의 가격. 2만 원 남짓한 세트의 가격도 있다. 출처=어플리케이션 Glovo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한국에서도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외식 가격, 교통비, 숙박 요금 등을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교해 보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먼저, 맥도날드의 빅맥 세트를 비교해 보자. 한국 맥도날드는 며칠 전 가격을 인상했고, 빅맥 세트는 현재 7,200원이다. 반면, 스페인 배달 플랫폼 글로보(Glovo)에 따르면 빅맥 세트는 9.4유로로, 약 13,000원이 조금 넘는다. 스페인 현지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점심 특선인 메누 델 디아(menú del día)가 있다. 식사부터 작은 사이즈의 커피까지 포함된 메누 델 디아는 저녁 식사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라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스페인 호스피탈리티 전문 일간지에 따르면, 2023년 메누 델 디아의 평균 가격은 13.2유로(약 19,470원)였다. 사람들이 그나마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점심 특선 가격이 2만 원이나 되는 것이다.
교통비도 너무 비싸 국민들이 이용하는 데 큰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수도 마드리드에서 약 200km 떨어진 지역을 기차로 가려면 편도 3545유로가 드는데 이는 약 5만6만 5,000원이다. 서울에서 약 200km 떨어진 전주까지의 KTX 요금은 34,600원이다. 택시 요금은 교통 상황에 따라 금액이 달라질 수 있으나, 서울에서 10km를 간다고 가정했을 때 약 13,000원 정도가 나온다. 마드리드에서 같은 거리를 달릴 때 약 19,000원으로 무려 5,000원 이상의 차이가 있다. 일간지 엘 파이스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스페인 호텔의 1일 평균 숙박 요금은 135.8유로(약 20만 원)라고 한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 오른 가격이다. 극단적인 예로, 마드리드의 가장 유명한 5성급 호텔들의 1박 가격은 200만 원을 웃돈다. 서울의 최상급 럭셔리 호텔로 여겨지는 시그니엘의 1박 평균 가격이 50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물가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고질적인 주택 임대료 문제 역시 출산율을 낮추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스페인 부동산 정보 업체 포토까사(fotocasa)는 2024년 4월, 스페인의 80제곱미터(24평) 평균 주택 임대료 자료를 공개했다. 스페인 전국 평균은 984유로(약 145만 원)로, 가장 비싼 지역인 마드리드는 1466유로(약 216만 원), 가장 저렴한 지역인 엑스트레마두라는 529유로(약 78만 원)였다. 마드리드에서는 월 70만 원으로 겨우 방 하나만 임대할 수 있어 남과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학생은 물론,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도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은 물론, 결혼과 출산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스페인은 고용 불안 문제도 심각하다. 일간지 라 라손(La Razon)의 보도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OECD 국가의 평균 실업률은 4.8%, 유로존 평균 실업률은 6.4%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실업률은 11.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보였다. 참고로, 청년 실업률은 무려 28.6%로, 스페인의 고용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리브레 메르까도(Libre Mercado)는 이러한 이유로 16~29세의 스페인 청년 중 15.9%만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립하는 EU 국가 청년의 평균 나이는 26.4세지만, 스페인은 30.3세로 평균보다 약 4년 늦었다. 스페인에서는 독립과 보금자리 마련이 늦어지다 보니 결혼과 출산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를 출산하는 연령도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의 집을 떠나 독립하는 평균 나이. 출처=https://es.statista.com/
스페인 정부와 지자체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한 저출산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할까? 현지에서는 출산과 육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스페인 정부는 출산 지원금, 출산 휴가 등의 제도 마련에 꾸준히 힘써왔다. 스페인 근로기준법에서는 산모와 배우자에게 16주의 유급 출산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유급 출산 휴가를 16주에서 20주로 늘리는 사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8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경우 연간 8주의 육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중 4주를 유급 휴가로 하여 부모의 육아 부담을 줄이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12세 미만의 자녀가 있거나 장애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 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 근로자는 일시적으로 최대 50%까지 근로 시간을 단축하고, 그에 따라 비례적으로 급여를 적게 받는 제도이다.
과연 법으로 정해진 출산 휴가와 근로 시간 단축 제도를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누리고 있을까? 그렇다. 스페인은 근로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인 만큼, 이런 사안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근로자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출산과 관련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 해고된 경우, 스페인 근로기준법에 따라 그 해고는 무효로 간주된다. 그 밖에 주정부 차원의 지원은 소득, 한부모 가정, 다자녀 가정 등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와 별개로 소득과 관계없이 0~3세의 자녀가 있는 가정은 매달 100유로(약 15만원)의 양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저 생계비를 받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저소득층은 자녀의 나이에 따라 별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쌍둥이나 세쌍둥이를 출산하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국이 지원해 주기도 한다.
스페인 정부는 산모와 배우자가 마음 놓고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지자체 역시 안정적인 육아 환경 조성을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다. 2023년 스페인의 출산율은 역대 최저였으나, 유일하게 전년 대비 출산율이 높아진 지역이 있는데 바로 마드리드(2.7% 증가)와 엑스트레마두라(0.6% 증가)였다. 다양한 혜택을 통해 출산율 감소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마드리드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지역이 되었다. 마드리드 주지사인 이사벨 아유소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산모와 배우자를 지원하기 위한 80개의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바 있다.
이사벨 아유소 마드리드 주지사. 출처=eldebate.com
연 소득 3만 유로(약 4,400만 원) 미만인 30세 미만의 여성이 출산하는 경우, 임신 5개월 차부터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산모에게 월 500유로(약 73만 원)를 지원한다. 모든 부모는 자녀 혹은 입양 자녀가 있을 때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주정부는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불임 부부에게는 치료를 시작하고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클리닉과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또한, 최적의 조건에서 난자를 보관할 수 있도록 마드리드 지역에 난자 은행의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 비싼 주택 임대료의 부담을 줄여 청년들이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주택 관련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했다.
스페인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 많은 지자체에서 관련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출산과 인구 감소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한국 언론과는 달리 스페인 내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심각한 이슈로 다루지 않는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으나 스페인 인구수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페인 라디오 방송국 COPE의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스페인 인구의 18%는 이민자다. 스페인 밖에서 태어난 850만 명의 아이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으며, 이민자 인구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것이 저출산을 해결할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페인 그란 카나리아섬에 도착하고 있는 아프리카 이민자들. 출처=elespanol.com
스페인은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출산율 하락을 경험한 바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와 유가 상승의 여파로 스페인 경제가 침체되어 고용 위기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스페인 경제는 호황을 누리며 출산율 반등을 기대했으나, 2008년 유럽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출산율은 또 한 번 쉽게 오르지 못했다.
스페인의 출산율 감소는 사회·경제적 어려움, 고용 불안, 관습과 사고방식의 변화, 주택 가격, 저출산에 대한 인식 부족 등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이다. 우선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국민이 인지할 수 있도록 관련 캠페인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월급 대비 비싼 주택 임대료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독립과 결혼, 출산을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점진적으로 출산율 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