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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과 즉석식품이 대세인 스페인… K-푸드의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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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최지윤(스페인) 

 

 

올리브로 유명한 스페인은 건강한 지중해식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육류 소비량이 엄청난 나라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77.67kg인데 비해 스페인은 100.56kg으로 유럽 내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은 편인데, 연간 5백만 톤의 돼지고기를 생산하여 세계 양돈업계를 선도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베리코 돼지’ 또한 스페인산이다. 세계 4대 진미로 여겨지는 ‘하몬 Jamon’ 역시 스페인산 프리미엄 숙성 햄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돼지의 종류에 따라 하몬의 맛과 가격은 천지 차이인데, 도토리만 먹고 자란 흑돼지인 베요타 하몬은 현지에서도 kg당 십만 원을 호가한다. 

 

 

  

국가별 1인당 육류 소비량 그래프

(출처: 유엔식량농업기구)

 

 

스페인은 채소와 과일부터 해산물까지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지역별 전통 음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고기 요리가 많다. 고기를 먹을 때 김치나 파절임, 각종 채소와 곁들여 먹는 한국과는 다르게, 접시에 큰 고깃덩어리 하나와 감자 같은 채소 몇 조각이 나오는 게 주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내 육류 소비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2022년에 발표된 스페인 농림부 식품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대비 전체 육류 구매는 12.7% 감소하였고, 그중 신선육 구매율은 전년 대비 13.8%나 감소했다. 가계 식비의 19%가 육류 구매에 사용되었으며, 이는 1인당 연간 303.60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21년에 비해 5.3% 감소한 수치이다. 전통적으로 고기 중심이었던 스페인 국민의 식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스페인에서도 건강을 챙기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국가비상사태로 두 달 이상 집에서 꼼짝없이 있어야 했던 스페인 국민은 건강한 먹거리와 삶에 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현지 일간지(20minutos)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의 86%가 팬데믹 이후 자신의 건강에 대해 더욱 신경 쓰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이탈리아(80%), 영국(69%), 프랑스(56%), 독일(42%)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샐러드 및 비건 음식 전문점이 급증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식당도 건강한 신메뉴를 선보이는 등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많은 프랜차이즈 샐러드 전문점 어니스트 그린.

일반 고객부터 비건 고객까지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보유하고 있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출처: 최지윤) 

 

 

한국에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갓생(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유행처럼 퍼졌다. 이런 트렌드는 스페인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에서도 '갓생 살기'와 유사한 '댓걸 챌린지(That girl challenge)'가 SNS상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모방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채소, 과일, 곡물 등이 풍부한 식단을 선호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육류 소비량이 줄게 되었다.

 

또한, 스페인 내 채식주의자의 증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과 윤리적 고려, 그리고 건강의 이유로 육류 소비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동물성 식품은 아예 섭취하지 않는 극한의 채식주의자인 ‘비건’부터, 채식을 지향하되 상황에 따라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푸드테크(the foodtech)의 기사에 따르면, 스페인 비건 관련 기업의 60%가 지난 4년 동안 설립되었으며 주요 고객층은 밀레니얼 세대(60%)가 1위였고, Z세대는 2위를 차지했다. 

 

 

  

스페인 최대 백화점 브랜드 엘꼬르떼 잉글레스의 유기농 식품 코너. 

(출처: 최지윤)

 

 

2021년 그린 레볼루션(The Green Revolution)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 중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인구수는 전년 대비 30% 증가하여, 성인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500만 명 이상으로 조사되었다. 샐러드 전문점에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붐비고 있으며, 이는 스페인 국민의 식물성 식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일반 우유 대신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슈퍼마켓에서는 아몬드 우유, 두유, 귀리 우유 등 다양한 식물성 우유가 판매되고 있다.

 

또한, 친환경 및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품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친환경과 유기농 식품은 항생제, 보존제, 인공 첨가물이 없으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240만 헥타르에 달하는 유기 농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1위를 다투며 유기농 식품 생산에 힘쓰고 있다. 스페인 내 수요는 아직 많지 않지만, 미래에는 스페인 국민들의 유기농 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인당 유기농 식품 소비에 연간 300유로 가까이 지출하는 스위스,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의 나라와 견줄 수는 없으나, 2021년 기준 스페인은 전년 대비 8.8% 증가한 58.15유로를 유기농 식품에 소비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페인 국민은 건강한 식습관을 갖기 위해 육류 섭취를 줄이고, 신선한 식품을 가까이하려는 추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 보험 회사 Vivaz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의 28%만이 신선한 음식으로 요리한다고 밝혀졌다. 또한 같은 연구를 통해 성인 3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일 이상 초가공식품을 섭취하며, 66%는 즉석식품을 섭취한다고 한다. 

 

스페인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외식 물가는 물론, 모든 식자재의 가격이 폭등했다. 건강하고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페인에서도 식품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친환경 및 유기농 프리미엄 식자재의 수요가 늘었으나, 동시에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식품을 찾는 국민도 함께 늘어났다고 분석할 수 있다. 

 

 

  

스페인 슈퍼마켓에 판매되는 즉석식품.

(출처: 최지윤)

 

 

현대인은 바쁜 일상으로 매일 요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먹기 편한 즉석식품 및 초가공식품의 소비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푸드리테일 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층에서는 특히 즉석식품 및 초가공식품을 섭취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48%의 스페인 국민이 음식을 구매할 때 영양성분이나 신선도보다는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알려졌다. 또한, 가격 절감과 편의성을 위해 즉석식품을 선택하는 소비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스페인 국민은 1인당 연간 16.5kg의 즉석식품을 소비했다. 그 중에서도 냉장식품이 가장 큰 매출 증가를 보였으며, 전체 즉석식품 소비량의 48%를 차지했다. 또한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즉석식품도 전체 매출의 14%를 차지하여 가장 큰 성장을 기록했다. 즉석식품 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자, 스페인 식품 회사들은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한 메뉴의 신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건강식의 유행과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육류 소비가 감소하고, 비건 음식 및 간편식품의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스페인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음식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으며, K-푸드와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 음식점은 현재 스페인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현지화되어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식들은 이미 스페인 소비자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어, 현지 음식업계에서는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한식은 풍부한 채소와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하며 ‘웰빙 트렌드’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퓨전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식당이 조금씩 늘고 있다. 

 

 

  

쌈을 현지 음식과 접목한 메뉴를 마드리드의 레스토랑에서 종종 보게 된다. 

덜 맵게 만든 김치 소스를 곁들인 요리도 최근 눈에 많이 띈다. 

(출처: 최지윤)

 

 

뿐만 아니라, 육류를 제외한 채소, 발효 식품, 식물성 소스, 생선, 콩, 두부, 버섯 등의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먹음직스럽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이에 한식은 트렌디하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스페인에 확산되고 있다. 

 

 

  

최근 스페인 주요 일간지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채소를 넣은 한국식 볶음면 잡채(상단) 소개 기사.

날생선이 들어가 있지 않고, 쉽게 만들 수 있는 한국의 김밥이 소개됨(좌측 하단). 

밀이나 옥수수 토르티야에 싸 먹는 멕시코의 타코와 비슷하지만, 상추나
양상추를 싸 먹는다고 해서 ‘한국의 그린 타코’라고 보도된 쌈(우측 하단).

(출처: elpais, elespanol)

 

 

다른 한편으로, 스페인 즉석식품 시장 성장은 K-푸드의 진출과 관련 있다. 한국에서는 팬데믹으로 외식이 줄고, 짧은 조리 시간에 저렴하게 먹으려는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즉석식품과 간편조리세트(밀키트)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다. 식품업체들은 소비자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였고, 그 결과 다양하고 향상된 품질의 제품이 출시되면서 소비자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즉석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으나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소비자들도 맛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을 만큼 맛은 아쉬운 편이다. 이에 한국 기업이 다양한 즉석식품을 스페인에 수출하여 틈새시장을 노려볼 수 있다. 특히 레토르트 식품은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수출에도 용이할 것이다. 밀키트의 경우, 스페인 시장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제품이라 현지에서 판매된다면 색다른 매력으로 현지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매운맛에 푹 빠진 스페인 사람을 제법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음식이 인스턴트 떡볶이와 라면이다. 부담 없는 가격에 진정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페인 대부분의 로컬 슈퍼마켓은 한국 식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김이나 김치 정도를 겨우 찾을 수 있고, 나머지 한국 제품은 아시아 마트나 한국 마트에 가야만 살 수 있다. 그나마 코스트코에는 한국산 냉동 만두, 치킨, 해초 샐러드 등을 찾을 수 있으나 이마저도 한정적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도 대도시에 살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마드리드 한식당에는 한국인보다 현지인 손님이 훨씬 많다. 한국 마트는 한국 식자재를 사기 위해 방문한 현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만큼 스페인에서의 K-푸드의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즉, 한국 식품산업이 스페인이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최적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출입 절차, 수출입 기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스페인 국민의 소비 패턴과 시장 조사를 꼼꼼하게 진행한다면 스페인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도전이 생각보다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