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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박물관·미술관 무료 방문’ 처방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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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 방문 처방전, 우울증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까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이주영(독일)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과중한 업무량, 학업으로 인한 부담감,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압박, 대인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개인이 감당할 만한 스트레스는 적절한 대응을 통해 삶의 긍정적 태도를 강화할 수 있지만 한도를 넘는 스트레스나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우리나라는 OECE 국가 중 자살률 1위(OECD Health data 2018~2021)라는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게다가 우울증 유병률(36.8%) 역시 1위를 차지했다. 열 명 가운데 네 명가량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상담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지 못한다.
우리에게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용어는 익숙하지만, 주변인이나 직장동료가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는 것은 아직 조금 낯설다. 유럽에서는 우울증 정도가 심하면 항우울제를 처방받거나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최근 약물치료와 병행하거나 약물 치료를 대신해 ‘박물관 ·미술관 무료 방문’을 처방전으로 써 주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불안을 완화하고, 우울감을 호전시키는 치료 목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방문을 권장하는 이 대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일상적인 활동이나 사회생활이 큰 벽처럼 느껴진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려울 때, 또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줄곧 무기력증을 느끼거나 혼자 있고 싶고, 우울감이 심한 사람들에게 ‘박물관 · 미술관 방문’이라는 처방전은 약간의 강제성을 띤 과제물이다. 일단은 틀어박혀 있던 방을 빠져나와야 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고, 누군가와 대면해야 한다. 전시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정체된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 있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새로운 장소와 전시 작품은 우울증 환자에게 부정적인 감정과 기분을 바꿀 수 있는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한 도시의 박물관은 그 지역 시민들의 문화적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과 예술품을 보관하는 데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역사나 가치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는 입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평가하고, 해석하여 동시대에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관점과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다양하고 잘 관리된 박물관을 자랑하는 도시는 유산을 보존하고, 그 업적을 기념하며, 지역민 사이의 유대감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전시물을 통해 이어지는 대화와 공동의 관람 체험은 개인적인 체험이면서 동시에 공공의 경험을 형성한다.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이 있고, 베를린에는 박물관 섬이 있고, 런던에는 대영박물관이 있듯이 박물관은 도시를 방문할 때 꼭 찾아가는 명소로 꼽힌다. 박물관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박물관이 속한 그 도시를 경험하고, 박물관 건물 자체의 건축적 가치를 알아보고, 그 도시의 주된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다. 방문객의 참여를 끌어내는 전시 공간 (출처: 이주영) 한편, 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내용을 학습하기 위해서 줄을 지어 전시물을 살펴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박물관은 우리에게 익숙한 교실을 확장한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한 가지 테마의 기원과 발전 과정, 그것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에서는 박물관이라는 개념이 교육학과 만나 더욱 적극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박물관 교육학은 박물관을 전통적인 교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역동적인 학습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체험형 수업이 가능하도록 전시 공간을 꾸민다. 독일 내 대도시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눈높이의 박물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간과 동물, 자연 사이의 공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테마를 정한 아노하(ANOHA), 실내 놀이터와 어린이 박물관을 결합한 형태로, 미로 속에 길을 찾는 참여프로그램으로 인기 있는 미로 박물관, 실험을 통해 물놀이와 물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물 박물관 등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 어린이 방문객에게 손짓한다. 박물관 교육학은 ‘체험형 접근 방식’을 수용함으로써 모든 방문자가 체험 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작동해보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도 키울 수 있다. 요컨대, 우리에게 박물관은 유명 도시의 상징이거나 교육의 현장으로 익숙하다. 그러나 박물관의 기능이 이것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의사가 처방하는 ‘박물관 · 미술관 방문’ 박물관 또는 미술관 방문을 처방전으로 받는다는 것은 좀 생소하다. 2021년부터 브뤼셀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는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물관 방문이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가져오고 예술품을 관람함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생활이나 문화 참여가 정서적, 정신적 상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음악을 듣거나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불안감이 줄어들며 부정적인 감정이 희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적 표현에서 발견되는 미적 체험이 뇌의 중추를 자극하여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술적 경험은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를 제공하여 일상에서 벗어나 작품 공간이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에너지와 긍정적인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작가와 교감하고 작품 세계에 말을 걸 수 있는 곳, 미술관은 이러한 관점에서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찾아 여가를 즐기는 방문객 (출처: 이주영) ‘코르티솔(Cortisol)’은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린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우리 신체 기관 중 ‘콩팥’의 부신에서 분비된다. 이 스트레스 호르몬은 긴장이 이완되고 불안감이 감소할 때 그 수치가 현저하게 낮아진다. 작품을 감상하는 활동을 통해 관람자는 긴장을 풀고, 작품 세계를 여행하며 자기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극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품에 몰입함으로써 우울한 생각이나 편중되어 있던 걱정에서 벗어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더라도 이런 문화적 공간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호르몬의 수치를 낮출 수 있다는 보고 사례가 흥미롭다. 이 시범 프로젝트는 친구나 가족의 동반 방문도 장려한다. 이를 통해 처방전을 받는 우울증 환자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함께 감상한 전시와 서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적인 상태로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회화 작품이나 역사 유적을 감상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창의적인 영감을 받고 일상의 긴장을 내려놓았던 경험도 하게 된다.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전시물에 몰입하고 미적인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기회는 박물관을 찾는 사람의 특권이다. 밤에 불을 밝힌 전시 공간 (출처: 이주영) 박물관 처방이 가져올 희소식 그동안 문화생활이나 예술적 체험이 정서적 안정을 가져온다는 많은 보고가 있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박물관 무료 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 처방은 아직은 시범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지만, 여러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개인의 정신 건강 상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생각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박물관 운영의 일차적인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닌 만큼, 지역민의 일상적인 참여와 잦은 방문으로 시민들의 정서적, 정신적 쉼터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시 기관의 이러한 기능이 충분히 수행될 수 있도록 지역 정부의 보조적 지원과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정기적으로 1년에 한 차례 <Lange Nacht der Museen(밤에 열리는 전시)> 라는 행사를 진행한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예외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개관하는 것이다. 이 행사는 이미 박물관을 방문했던 사람이 늦은 시간에 같은 전시 공간을 방문할 기회로 삼을 수 있고, 지역민 모두에게 이 미술관을 다시 알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정체된 전시장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다르게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지역민의 방문 유치에 나서는 것은 이들 박물관, 전시관이 공공장소로서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교육적 기능에 한정된 박물관, 미술관의 역할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일상 속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우울증 환자의 상태 호전의 잠재적 환자의 예방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겠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